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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

보이스피싱


어제 오후에 일어난 일이다.

낮잠 한숨 자려던 찰나 전화벨이 울린다.


전화받아라. 전화받아라. 


몸은 다 누웠고 머리만 뉘이면 되는데 타이밍 참 좋네.

서대문경찰청 정보과란다. 

나름 소시민으로 남한테 피해 안 주고 살고 있다 자부하는 편이라 당황스럽다.

 

"무슨 일이시죠?"


 어눌한 말투에 낚시인가 하다가 혹시 몰라 용건을 묻는다.

금융사기 어쩌고 대포통장 어쩌고 출석요구서 어쩌고...

나의 오침을 방해한 대가가 이거란 말이냐 순간 짜증이 일어난다.

 

가만 요즘 의욕이 좀 떨어져서 무료한 나날을 보내던 참이었는데 잘 됐다 싶었다.

바짝 쫄은 목소리로 


"그래요?제 통장이 사건에 이용됐다구요? 큰일 났네.이 통장은 드러나면 안 되는 통장인데.어떡하나?"


어눌한 목소리가 다시 묻는다.


"예.다이어리에 적혀 있는 통장이 농협, 기업은행 통장 두 개인데요.농협 통장번호가 XXX XX XXXXXX맞으시죠?"


통장번호까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가만 농협 기업은행 통장 두 개라 했는데 농협통장 번호만 말하네.

NH대란 때 내정보를 구했구나.

일단 이 어눌한 목소리를 내 시나리오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몇 가지 장치가 필요하다.

 

"아닌데요." 


"정말 아니에요? 누구누구씨 통장 아니에요? 거짓진술하면 처벌을 받을 수가 있어요. 조사하면 다 나와요..."


잠시 시간을 끌면서 머뭇거리다가 어쩔수 없다는 투로 말한다.


"제 통장이 맞긴 한데 지금은 안 쓰는 통장인데요.."

 

"아까 XXX씨 통장아니라고 했잖아요? 말했다시피 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면 처벌을 받는 수가 있어요." 

위압적인 말투로 협박하는 것을 보니 연습 많이 했겠다 싶었다.

 

이번 시나리오에서 나는 부업으로 핀란드, 독일, 우리나라 삼국에서 중계무역을 하고 탈세를 일삼는 사람이다. 저번에는 일본의 나카소네를 써먹었으니 이번엔 독일의 토마스를 등장시켜야겠다. 

참고로 토마스는 아동용 애니메이션 토마스와 친구들에 나오는 기차이름이다.

 

"죄송합니다. 이 통장은 드러나면 안 되는 통장이라 그랬습니다." 


뒤이어 혼자말을 하는 투로 나직하게 


"큰일났네...다른 통장 놔두고 하필 이 통장이...어떡하나?"


"이 통장이 왜요?" 


덫을 물었다. 이젠 보이스피싱 전화가 아니라 탈세연루사건 시나리오로 바뀐 것이다.

 

"아 큰일났네. 하필 이 통장이...다른 계좌로 옮겨 놓을걸."


마지막에 한숨까지 쉬니 이 어눌한 목소리는 내가 왜 이러나 궁금해 죽을 지경이다.


"XXX씨 사실대로 말해주셔야 돼요. 이 통장이 무슨 통장인지는 모르겠지만 사건에서 대포통장으로 쓰여서....(중략) 무슨 일인지 저한테 말씀해보세요. 그래야 제가 무슨 조치라도 취할 수 있을 것 아닙니까?"

 

아직은 때가 아니다. 좀 더 기다려달라!! 

이 상황의 심각성을 더 키울 필요가 있다. 한숨만 쉬면서 곤란하다는 말만 계속하다가 


"이 전화 녹취되는 거 아니죠?" 물어본다. 

피의자 동의없인 녹취를 하면 안 된단다. 얼씨구

 

"보고서 올릴 때 이 통장 말고 다른 통장으로 올리면 안 되나요? 이 계좌번호 올라가면 곤란한데...."


"XXX씨 우린 이 통장이 무슨 통장 인지는 관심없구요. 그냥 사건조사만 하면 돼요. 아시겠어요? 그러니까 이 통장에 무슨 감추고 싶은 일이 있다해도 우리하곤 관계가 없고 조사하지도 않을거에요. 그러니까 무슨 일이 있는 지 말씀해보세요."

 

"경관님 믿어도 되죠? 아 이거 알려지면 안되는데...곤란하네." 


꾸 간만 보고 있으니 어눌한 목소리도 짜증이 나는가보다.


"XXX씨 잘 들으세요. 자꾸 이렇게 말도 안하고 수사 방해하시면 사실은닉죄에다가 공무집행방해로 가중처벌받을 수도 있어요. 생각 잘 하시고 말하던지 말던지 하세요." 


쩝..경찰놀이에 신이 나셨구만.

 

"알겠습니다.제가 경관님만 믿고 다 말씀드릴게요.근데 이거 녹취하시면 안돼요.아셨죠?"


"아 자꾸 이러시네. 피의자 동의없이 녹취하면 제가 문책당해요. 이제 됐죠?"


"좋습니다. 근데 이 전화 수신자부담인가요?"


"XXX씨 국가기관인 경찰이 국민상대로 어떻게 수신자부담으로 전화를 합니까?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전에 경관님은 수신자부담으로 전화를 해서 통화료가 많이 나왔거든요. 진짜 수신자부담아니죠?"


"아닙니다. 아니에요. 참 네."

 

"좋습니다. 경관님만 믿고 사실대로 말씀드릴게요. 이 통장은 작년에 무역대금 받을 때 딱 한번 쓰고 그 담부턴 한번도 안쓰고 있는 통장인데요. 갑자기 대포통장이 됐다니 황당하네요."


"무역대금이요? 무슨 일 하시는데요?"


"부업으로 무역을 하거든요."


"통장에는 얼마나 들었는데요?"


"지금 $54,000,000쯤 들어 있을건데요."  정도가 어설플 바에야 차라리 정도를 훌쩍 넘기는 편이 좋다.


"$54,000,000요???????????" 엄청 놀래네.


"무슨 돈이 그렇게 많이 들어 있어요?"


"제가 중계무역을 하는데요. 무역대금 전체가 제 돈이 아니라 우리는 거기서 수수료로 5%를 먹어요.

작년에 토마스가 회사 돈을 은닉할 계좌가 필요하다 해서 제가 수수료 얼마 받고 받아 놓은 거거든요."


"토마스요?"


"예. 독일에 토마스요. 제가 핀란드, 독일 상대로 무역을 하거든요. 티 에이치 오 엠..."


"예.예.우리도 토마스 철자정도는 알아요. 뭐를 수출하시는데요?"


"핀란드에서 물건 떼서 독일에다 팔고 남으면 우리나라에 팔아요."


"무슨 물건이요?"


"껌이요. 자일리톨 아시죠?" 이 어눌한 목소리는 내가 장난인지 아닌지 긴가민가 할 것이다.


"껌이요???????????"


"네.껌이요. 이래뵈도 독일에 제가 수출하는 껌 시장점유율이 20%대입니다."


"직원은 몇명인데요?" 장난인가 싶으면서도 태연한 말투니 어눌한 목소리도 긴가민가 하나보다.


"우린 그나마 중개라 직원은 저빼고 3명인데요. 근데 경관님 지금 제가 하는 말들은 전부 아무한테도 말씀하시면 안됩니다. 어? 옆에서 누가 얘기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우리 통화 다 듣고 있는건가요?"

 

"저랑 같이 일하시는 팀장님인데요. 믿을 만한 분이니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아 진작 말씀해주시지. 저는 경관님만 믿고 다 말씀드린건데 이러시면 곤란하죠. 이 통화도 지금 저몰래 녹취하는 거 맞죠? 아 큰일났네. 그럼 $54,000,000 얘기도 다 들었겠네요?"

 

"괜찮다고 해도 자꾸 이러시네. 이것 보세요. XXX씨 자꾸 이러시면 저도 곤란합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최대한 도와드릴려고 이러는데 자꾸 엉뚱한 말만 계속하시니 그냥 출두하셔서 대면조사 받으셔야겠네요. 사실대로 다 말하시던가 아니면 오늘 중으로 출두하세요. 저도 더 봐드릴수가 없네요." 


어눌한 목소리가 진력을 내기 시작한다.

 

"죄송한데 요즘 몸이 안 좋아서 출두하기는 좀 그렇네요."


"몸은 또 어떻게 안 좋은데요?"


"요즘 540도 발차기 연습하는데 연습하다가 양 무릎 십자인대가 끊어져서 수술했거든요.

움직일 수가 없어서 지금도 침대에 누워서 전화 받고 있어요."


"발차기요???????"


"네. 핀란드에서 독일로 가려면 발트해를 건너야 되는데 소말리아 해적들이 요즘 여기로 옮겨왔다는 정보가 있어서요. 껌 실은 배 털리면 제가 곤란하거든요."

 

어눌한 목소리는 한동안 말이 없다.


"XXX씨 잠깐만요. 팀장님 바꿔 드릴게요. 팀장님하고 얘기해보시고 경찰청으로 출두하시던지 결정하세요."


"아 곤란한데...저는 경관님만 믿고 다 말씀드리는거구요. 다른 사람이 알게되는게 좀 그렇네요. 

 괜히 이 통장이 걸려가지고...아 큰일났다. 큰일났어." 짐짓 발까지 동동 구른다.

 

"XXX씨 팀장님하고 저하고 이 사건을 수사하기 때문에 어차피 다 알게 되어 있어요. 

 염려하지 마시고 팀장님한테 다 말씀하세요.팀장님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에요. 아셨죠? 잠깐만요."

 

옛날 자동차 후진할때 나오는 멜로디를 카세트로 틀었는지 CD로 틀었는지 수화기 너머로 자기들 수군대는 목소리와 섞여서 들려온다. 이 자식들 후지게...

전화연결음이라도 좀 그럴싸하게 전자식으로 하면 안 되나

 

"서대문경찰청 정보과 정보1계 유기욱 팀장입니다." 오 관등성명 그럴싸한데


"사건 내용은 방금 전 들어서 잘 알고 계시겠고...제가 몇 가지 질문 좀 드릴게요." 

완벽한 서울말투다. 서울사람을 스카웃했나보다.


"좀 전에 들으니 농협 통장에 곤란한 일이 있으시다구요? 우린 그런 것에 관심없구요. 

사건 조사만 하면 됩니다. 지금부터 몇가지 질문을 드릴텐데요.

사실대로 말씀해주셔야지 거짓진술하셨다간 가중처벌 받으실 수 있습니다. 조사하면 다 나와요."


확실히 어눌한 목소리보다 센 놈이다. 

처음부터 내 시나리오를 관심없다는 말로 차단한다.

 

"먼저 가지고 계신 통장 은행이 어디어디인가요?"


"예. 농협하고 기업은행 하고요."  "예...농...협....기..업..은..행..." 받아 적나 보다.


"국민은행."  "예. 국...민...은...행"

"신한은행"  "예. 신..한..은...행"

"하나은행"  "예. 하...나...은...행"

"우리은행"  "예. 우...리...은...행"

"외환은행"  "예. 외...환...은...행"

"신협. 축협. 새마을금고."  "..................."

"SC제일은행. 우체국. 부산은행."  "...................."

"대구은행." "..............." 


우리 유기욱 팀장님 잠시 말이 없다가 입을 뗀다. "은행마다 통장이 다 있어요?"   

"네."


"그럼 카드는요? 다 인터넷뱅킹이나 텔레뱅킹 다 되죠?" 


"네. 카드도 은행별로 다 있고 인터넷뱅킹이나 텔레뱅킹도 다 됩니다.."


"근데 통장하고 카드가 왜 이렇게 많아요?"


"예. 무역하다보면 무역대금이 제 때에 안 들어오는 수가 있어서 그럴 때는 제가 카드로 돌려막기를 해야되거든요."

 

"그럼 이게 전부 다죠? 다른 통장은 더 없죠?" 


"아 KCC저축은행 하나 더 있어요." "KCC요?" "네. KCC요." 


"KCC모르세요? 김승연 회장이 PF대출 받아서 야구빳다 제조공장 지을려다가 말아먹은거요." 


김승연은 한화의 야구빳다 그 김승연이다. 

우리 유기욱 팀장님 갑자기 진짠지 가짠지 모르는 말들이 뒤죽박죽 섞여나오니 혼란스럽나보다. 

혼자 뭔가를 중얼중얼하더니 이내 정신을 되찾은 것 같다.

 

"이번에 부도처리된 저축은행 말씀하시는 거죠?" "네."


"그럼 이거빼고 가지고 계신 통장이 이게 전부인가요?" "네."


"그럼 농협 XXX XX XXXXXX 통장 비밀번호가 어떻게 되나요?" 

드디어 왔구나. 

이 통장에는 아직 전개하지 못한 내 시나리오가 남아 있단 말이다. 

명 포섭권유

 

"아 이 통장은 곤란한데요. 이 통장 계좌가 밝혀지면 제 인생은 끝장납니다. 제발 부탁이니 아까 통화한 경관님하고 다시 통화하게 해주세요. 그 경관님한테만 말씀드리고 싶네요."

 

"아 자꾸 이러시네. XXX씨 그냥 출두하세요. 자꾸 이러시면 출두해서 대면조사 받으셔야 되요. 

 오늘 언제 시간 되세요?"


"지금 무릎수술때문에 움직이기가 곤란한데요."


"그럼 전화상으로 몇 가지만 여쭤볼게요. 다 XXX씨 편의 봐드릴려고 하는건데 자꾸 이러시면 저희도 방법이 없습니다."

 

유기욱 팀장님이 옆에 있는 것 같은 어눌한 목소리더러 뭐라 뭐라 한다. 

설마 이 놈은 안 되겠으니 다른 호구를 골라보자는 소리는 아니겠지?


"예. 물어보시는대로 다 말씀드릴게요. 이 통장만 빼고 다 말씀드릴게요."  

갑자기 소변이 마렵다. 

핸즈프리로 통화하면서 만화책보고 있었는데 잠깐 기다리시라 하면 전화를 끊을까봐 귀에 이어폰 꽂은 채로 화장실로 간다.

 

"죄송한데 잠시만요.볼일 좀 봐야겠는데요."

 

"지금 다른 일 하시면 안됩니다."


"생리적인 현상인데 어떡하라구요!!" 순간 나도 모르게 버럭 일갈이 나온다.

"그래도 지금 핸즈프리니까 통화는 계속할 수 있어요."


"아 네. 제 말은 볼 일 보는 것 말고 다른 일 하시면 안 된다구요." 

우리 유기욱 팀장님 어이가 없으신지 피식 콧바람을 내뿜는다.

 

"먼저 기업은행 계좌 좀 불러주세요."


"대포통장이 농협이라면서요? 근데 기업은행 계좌번호는 왜요?"


"XXX씨 자꾸 이러시면 청에서 사람 보내서 강제연행할 수도 있어요.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하세요."


"올 때 체포영장도 가지고 오시나요?" 


"당연하죠." 놀구 있네ㅋㅋㅋ


"아 안 되는데...지금 집이 엉망이거든요." 


"집은 또 왜요???????????????????"


"어제 관리비 밀렸다고 관리인이 집에 찾아왔었거든요. 저녁 먹는데 찾아와서 관리비 낼 돈은 없고 밥먹을 돈은 있냐면서 저녁상도 엎고 책상도 엎어버리고 가서 지금 방이 개판인데요."

 

우리 유기욱 팀장님 말이 없다.


"XXX씨 지금 장난인 줄 아시나 본데 자꾸 이러시면 사람 보내서 청으로 연행할테니까 잠깐만 기다리세요."


"아이고 죄송합니다. 장난이 아니고 진짜에요. 한번만 봐주세요. 여기 원룸 관리인이 성격 난폭한 걸로 유명하거든요."


"한번만 더 이상한 말 하시면 그땐 진짜 봐드리는거 없어요!!!" "네"


"기업은행 계좌번호가 뭡니까?" "XXXX XXX XXXXXX 인데요."


"비밀번호는요?"


 "XXXX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네"

 

잠시후


"XXX씨 진짜 장난 치실겁니까? 아 진짜 안 되겠네." "왜요?"


"기업은행 계좌번호 없는 거라고 나오는데 이거 어떻게 된 겁니까?" 

당연히 없는 계좌라고 나오지. 계좌번호 거꾸로 불러줬으니까...


"그럴리가요? 지금 통장에 써 있는 계좌번호 그대로 불러드렸는데요. 제가 지금 통장을 보고 있다니까요. 불러드린 통장 번호 한번 불러봐주세요." 


"XXXX XXX XXXXXX요." 맞네. 거꾸로ㅋㅋㅋ


"이상하네. 계좌번호는 정확한데 혹시 검색프로그램 뭐 쓰세요? 익스플로러? 구글 크롬? 파이어폭스?"


"지금 그거하고 이거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요?"


"전에 은행 전산망 교체작업한다고 한 적 있거든요. 제가 익스플로러 쓰는데요. 은행별로 모듈이 안 맞으면 계좌인식을 못 한다고 들었던 것 같아서 물어 본 건데요."


"그래도 의심 되시면 메일주소하나 불러주세요.제가 통장 제일 첫면 디카로 찍어서 보내드릴게요."

 

갑자기 옆사람하고 뭔가를 수근대기 시작한다. 메일이 어쩌고 저쩌고하는 소리가 들린다. 


"팀장님 지금 옆에 분한테 제 욕 하셨죠?"


"아니요. 그런거 아니라..." 


"에이 제 욕하신 거 맞는데요."


"아니라니까요."


"메일 주소 불러주세요. 지금 찍어서 바로 보내드릴게요." 헐 진짜 보내주면 어떡하지?


"이건 뭐 됐고...농협통장 비밀번호 좀 불러주세요."


"또 농협이네. 아 이 통장은 안 되는데"


옆에 어눌한 목소리한테 말한다."어이 출동준비해."

 

"아 알겠습니다. 다 말씀 드릴게요. XXXX요."


"우리 피곤하니까 묻는 말에 바로 대답해주세요. 잠깐만요."

 

잠시후


"XXX씨 안 되겠네요. 제가 최대한 편의 봐드려서 전화로 해결할려고 했는데 자꾸 장난 치시니까 안되겠어요. 지금 사람 보낼테니까 준비하고 계세요."


"네? 왜요?" 


"몰라서 물어요. 비밀번호가 안 맞잖아요?" 당연하지 그건 우리 부장님 차 번호거든.


"그럴리가요? 아까부터 자꾸 없는 계좌라 그러고 비밀번호도 안 맞다 그러고. 그러면서 자꾸 출동한다고 그러고. 진짜 미치겠네요." 

 나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서는 유기욱팀장님보다 더 짜증스런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

 

"안 되겠어요. 지금부터 2시간 안으로 갈테니까 준비하세요. 지금 계신 곳이 경기도 광주시...그 다음에 뭔가요?"


"제 주소요?"  "네"


"경기도 광주시...." "예...경기도 광...주....시" 또 받아 적나보다.


"멕시칸..." "멕.....예? 멕시칸요?"


"네..." "멕시칸? 치킨요?" 이 대목에서 옆에 있던 어눌한 목소리가 빵 터졌다.


"옆에 웃는 사람 누굽니까? 저 지금 멕시칸 산다고 무시하는 거에요?"


"XXX씨 아까부터 없는 계좌불러주고 이번엔 멕시칸 산다고 하고 자꾸 장난 하시는데...출두하시면 이거 다 죄 물을겁니다. 경찰 상대로 허위진술하셨으니까 공무집행방해에 아까 농협통장에 이상한 거 있다고 하셨죠? 금감원에 조사넣으면 다 나와요. 그러면 14일 동안 구류될 수 있어요.얼굴 맞대고 천천히 얘기해볼까요?"


"14일이요?" "네.최하 14일이요."


"안되는데 그럼 14일 동안 집을 떠나 있어야 된다는 말이잖아요?"


"그렇죠." 


"그럼 14일 동안 제 돈 내고 밥사먹어야 돼요?"


"감방에서 다 나옵니다."


"안되는데...혹시 사식되나요?"


"사식은 무슨 경찰을 우롱했으니까 김치에 단무지하고 14일동안 맛있게 드셔 보세요."


"아 안되는데 팀장님 부탁이 있는데 들어주실 수 있나요?"


"뭔데요?" 


"아침메뉴에 사식으로 함박스테이크 먹으면 안 되나요?"


"함박스테이크요????????????" 옆에 어눌한 목소리가 또 빵 터졌다.


"네. 제가 몸이 약해서 아침마다 함박스테이크 먹어야 되거든요."


"함박스테이크 같은 소리하네. 감방에 함박스테이크가 어디 있습니까?"


"아 아침마다 먹어야 되는데 큰일났네."


"함박스테이크 같은 소리하지 마시고 사식으로 계란후라이나 드쇼" 

생각해보니 이때부터 우리의 유기욱팀장님이 막나가기 시작했던 것 같다.

 

"계란후라이 되나요?" "네"


"그럼 계란후라이 두 개 먹으면 안 되나요?" 두 개 말할 때 내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ㅋㅋ거리고 말았다.


"어 지금 웃었죠? 이 사람 이거 안 되겠구만. 경찰 상대로 장난이나 치고. 

어디 내 얼굴 보고서도 그렇게 웃을 수 있나 한번 봅시다."


나 갑자기 헛기침을 하면서 "크크큼...무릎이 안 좋으니까 갑자기 기침이 나오네. 웃긴 누가 웃었다고 그러세요? 14일 동안 아침마다 함박스테이크 못 먹을 생각만 하면 지금도 걱정이 돼 죽겠는데." 한

번 터진 웃음은 정말 참기 힘들다. 억지로 참으면서 말하기 정말 힘들구나

 

"어디 내 얼굴 보고서도 그렇게 장난 계속 할 수 있나 한 번 봅시다. 내가 XXX씨 보자마자 강냉이를 털어버릴라니깐."


"강냉이요?" 


"예. 강냉이요. 하나도 남김없이 다 털어버릴라니깐 지금 바로 준비하세요."


"아이고 아침에 함박스테이크도 못 먹게 하고 달걀후라이 두 개 먹으면 안되냐니까 장난 치지 말라하고 이제는 강냉이 털어버린다 하고"


"왜 겁나세요?" 


"국민을 지켜줘야 하는 경찰이 국민 상대로 강냉이 털어버린다 협박이나 하고 내가 무슨 옥수숩니까?"


"이거 녹음도 안 하는 상태니까 증거도 없을거구요. 꼬우면 경찰 민원게시판에다가 올리시던지"


"민원게시판 이런거는 시간이 많이 걸려서 안되구요. 통화내역 뽑아서 지금 전화거시는 곳 주소 좀 알아볼려고요. 중국공안하고 연계수사 해야되니까 시간이 좀 걸리겠네요."

 

1시간 30여분에 걸친 통화는 이렇게 끝나고 수신자부담이 우려돼서 114에 전화를 걸어 오늘자로 수신자부담 통화내역이 있는지 알아보니까 그런 내역 없다고 한다. 


그리고 나는 잠시 미뤄뒀던 오침에 빠져들었다...



2012.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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